이동 삭제 역사 ACL 마이클 조던/생애 (r2 문단 편집) [오류!] 편집기 RAW 편집 미리보기 굵게기울임취소선링크파일각주틀 == 두 번째 컴백과 세 번째 은퇴 == ||<table width=400><table bordercolor=#3F00FF><#ffffff>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bossip.files.wordpress.com/jordan-wizards.jpg|width=100%]]}}} || 마이클 조던의 40세 생일을 축하하는 잡지의 표지. 여기서 40세인 선수들 중에서 [[존 스탁턴]][* 이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게 된다.], [[로저 클레멘스]][* 마찬가지로 이 시즌을 마치고 은퇴하는 듯 했지만 [[앤디 페디트]]와 함께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가서 팀의 상승세를 돕다가 2007년에 완전히 은퇴했다. [[미첼 리포트|그러나..]]], 론 프랜시스[* 해트포드 웨일러스 - [[피츠버그 펭귄스]] - [[캐롤라이나 허리케인스]]를 거친 센터로, 2004년에 은퇴한 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캐롤라이나 역사상 최고의 센터였다. 이후 그 계보는 에릭 스탈이 이어받게 된다.], [[제리 라이스]][* 라이스는 2004년 시즌을 마치고 2005년에 은퇴하게 된다.] 역시 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화려한 농구인생을 정점에서 마무리한 조던은 2000년 1월 19일에 [[워싱턴 위저즈]]의 주식을 매입해 주주 겸 사장으로 재직했다가, 구단주 에이브 폴린의 권유로 우리 나이로 마흔에 다시 복귀하게 된다. 그가 복귀한 사실에 대해 팬들은 당시 떨어져만 가던 NBA의 인기를 회복시키고자 데이비드 스턴이 복귀를 종용했다 어쨌다 말이 많았고, 후에 조던 또한 자의로 복귀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의 인터뷰로 이를 어느정도 긍정했다. 실제로는 스턴이 아니라 당시 워싱턴의 지분을 갖고 있던 조던이 팀 가치를 끌어올리고 싶었던 구단 수뇌부의 종용으로 복귀한 것이다. 선수는 구단의 지분을 소유할 수 없는지라 그는 일시적으로 자신의 지분을 양도하고 은퇴 후 돌려받고자 했는데 여기에 관해선 후술하겠지만 끝이 안 좋았다. 당시 워싱턴은 강팀이 아닌지라 복귀 후 플레이오프 진출 정도를 목표로 삼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 게다가 더 이상 실력도 예전의 그만큼은 아닌지라 팀내에서는 조던 중심으로 돌아가는 팀에 대한 불만도 꽤 많았다고 한다. 다만 [[반론]]을 하는 사람들은 당시 조던은 젊은 선수들의 서포트에 충실하겠다며 스스로 [[식스맨]]을 자처하고 나섰는데, 시즌이 지나가다보니 이건 뭐 경기력이 일정 수준은 돼야 식스맨을 뛰지... 실제로 워싱턴은 조던이 오기 전에 '''19승'''팀이었다. 결국 스타팅으로 어쩔 수 없이 출격. 그래서 막상 팀 성적을 좀 끌어올리고 보니 어린 선수들은 "노친네가 욕심은ㅋ" 이딴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조던도 빡칠 노릇. 게다가 당시 멤버들 보면 조던 말고 딱히 득점할 사람도 없었다. 끽 해야 아직 신인이였던 리차드 해밀턴, 후에 트레이드되어 온 제리 스택하우스 정도. ~~그럼 나보고 어쩌라고~~ * 실제로 당시 신인이던 에탄 토마스는 2020년에 인터뷰를 통해 조던은 워싱턴에서 동료들을 몰아붙히는 스타일도, 콰미 브라운을 그렇게 엄청 갈군 것도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군기를 잡은 건 [[찰스 오클리]]같은 다른 베테랑이었고, 콰미를 갈군 것은 감독 덕 콜린스였으며, 자신은 콰미가 망한게 조던 탓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이 마흔에 몇 년씩 딴짓을 해온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20점-5리바운드-5어시스트라는 리그 엘리트 [[스윙맨]]의 지표급의 활약을 보여주어 열심히 그를 따라잡으려 하는 후배들의 목표를 한층 상향시켜 주었다. 조던으로 [[키배]]가 벌어지면 나오는 단골 레퍼토리. "그 정도 성적은 얘도 찍을 수 있다능!" "2년 쉬다 복귀하고 마흔넘어서 저 성적 찍어보든가?" "…" 조던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에 높아서 그런지 가끔 이 시절을 흑역사라든지, 하지말았어야되는 복귀 취급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물론 전성기에 비하면 발끝에도 못 미치지만 이 때 조던만 해도 리그를 주름잡는 슈퍼스타들과 대등하게 매치업하던 스타였다. 02시즌의 경우 초반엔 리그 득점 3위까지 올랐으며 20여경기를 소화할 때만 해도 평균 25점을 상회했다. 또한 탁월한 기본기로 저하된 스피드를 커버했으며, 수비에서도 전성기처럼 수비왕급은 아니라도 준수한 수준을 유지했다. 득점 뿐 아니라 게임리딩과 리바운드 능력도 수준급이었으며, 무릎문제로 고생하면서도 02시즌엔 34.9분, 03시즌엔 전 경기를 뛰면서 무려 37.1분을 뛰는 등 체력도 준수했다. 사실 조던이니까 둔하다, 점프력 낮아졌다 소리 듣는 거지 이때만 해도 웬만한 30대초반 슈퍼스타 스윙맨급 운동능력이었다. 개인능력보다도 더욱 뛰어났던 것이, 팀을 승리로 이끄는 능력이었다. 이때 워싱턴이 얼마나 답이 없었는지는 조던이 팀에 합류하기 전후의 성적을 보면 나온다. 조던이 합류하기 전 워싱턴은 19승밖에 못 하던 팀이었다. 그러나 조던 한 명의 합류로 워싱턴은 2001-02 시즌, 2002-03 시즌 동안 각각 37승씩을 기록했다. "젊은 선수들이 성장한 결과인 것 아니냐"고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그가 떠난 직후에 팀 성적이 25승으로 무려 12승이나 떨어졌다. 심지어 이때 조던만 떠난 게 아니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새로운 에이스 [[길버트 아레나스]]를 공수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떨어졌다. 아레나스 영입이 없었다면 얼마나 떨어졌을지 모르는 일. 즉, 바닥을 기던 팀이 조던 한 명의 합류로 성적이 거의 두 배로 뛰면서 플레이오프 경쟁에 합류했고, 조던이 떠나자 또 다시 성적이 추락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워싱턴 시절 조던은 노쇠해도 MVP급이던 시카고 시절만큼은 못해도 당시 리그를 주름잡던 스윙맨들, 즉 코비 브라이언트, 트레이시 맥그레이디, 빈스 카터, 레이 앨런, 앨런 아이버슨, 폴 피어스와 비교해 말석 정도는 충분히 차지할 만했다. 2001-02 시즌과 2002-03 시즌 당시 리그내 최고선수 반열에 들던 코비, 맥그레이디, 아이버슨과의 비교는 무리고 두 시즌동안 평균 26점을 기록했던 피어스와 비교해도 딸리지만, 앨런과 카터와는 얼추 비할법하다. 두시즌 통합 기록을 내면: 조던: 142경기 출장 평균 36.1분을 뛰며 21.2점 5.9리바운드 4.4어시스트 1.5스틸 0.5블록, 필드골 성공률 43.1% 3점 슛 24.1% 자유투 80.5% 카터: 103경기출장 평균 37.4분을 뛰며 23점 4.9리바운드 3.7어시스트 1.4스틸 0.8블록, 필드골 성공률 44.2% 3점 슛 47.4% 자유투 80.1%. 앨런: 145경기 출장, 평균 37.3분을 뛰며 22.2점 4.8리바운드 4.2어시스트 1.3스틸 0.2블록 필드골 44.9% 3점 슛 40.5% 자유투 89.8% 또한 추가로 조던의 TS%는 48%로 앨런의 58%와는 차이가 상당히 많이 나며, 카터의 52.1%보다도 4% 적다. PER은 앨런이 가장 높아 21.5, 카터는 21.1, 조던은 19.9이다. 셋의 스탯을 비교하면 조던이 득점과 필드골 성공률, 3점 슛 성공률은 가장 낮지만, 리바운드와 어시스트, 스틸은 가장 높다. 자유투성공률은 독보적으로 높은 앨런을 빼면 카터와 조던은 비슷하다. 블록은 카터, 조던, 앨런 순. 사실 세 선수의 팀에서 위상이나 팀전력이 얼추 차이가 안 났다. 그리고 '''세 선수 모두 올-NBA 팀 선정엔 실패했다.''' 즉, 전체적으로 저 여섯 선수들과 조던을 비교하면 당시 단연 앞서나가던 코비와 맥그레이디, 아이버슨, 그 다음으로 올-NBA 세컨드 팀 2년 연속 선정에 빛나는 피어스 다음으로 저 셋이었다. 정리하자면 득점은 카터-앨런-조던 순으로 23점-23.2점-21.2점 순, 슛성공률은 TS%/필드골은 앨런-카터-조던 순으로 TS%는 58%-52.1%-48%, 필드골은 44.9%-44.%-43.1%, 자유투는 앨런-조던-카터 순으로 89.8%-80.5%-80.1%, 3점 슛은 카터-앨런-조던 순으로 47.4%-40.5%-24.1%이다. 그리고 리바운드는 조던-카터-앨런으로 5.9개-4.9개-4.8개, 어시스트는 조던-카터-앨런으로 1.5개-1.4개-1.3개, 블록은 카터-조던-앨런으로 0.8개-0.5개-0.2개이다. PER은 앨런-카터-조던 순으로 위에 언급됐다시피 21.5-21.1-19.9 추가 윈셰어수치나 박스스코어 +/-수치의 경우 팀전력에 크게 영향을 받는 수치이므로 개인의 기량을 비교하는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일단 생략한다. 전체적으로 1차 스탯은 세 선수가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2차 스탯에서는 앨런과 카터가 더 우위이다. 또한 수비에서 세 선수에 대한 평은 각자 다를 수 있으므로, 이 세 선수의 당시 위상에 대한 비교는 당시 이들이 있을때와 없을때 팀전력, 실제경기력, 여러 스탯을 종합해서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한편 단짝이었던 피펜과 서로 포틀랜드-워싱턴의 저지를 입고 만나는 명장면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여담이지만 위에 나온 식으로 피펜의 01-02, 02-03 두 시즌의 기록을 통합해보면 10.7점 5.1어시스트 4.8리바운드 1.6스틸 필드골 42.7% 3점 29.7%, 자유투 79.6%가 나온다. 조던과 비교하면 거의 전 항목에서 현저한 열세이며 특히 득점은 두배 정도 차이가 난다. 애초에 올스타급 선수들과 대등하게 맞서던 조던과 달리 당시 피펜은 지극히 평범한 주전급 선수 정도의 위상이었다. 피펜이 조던보다 두살이나 (생일을 생각하면 2년 7개월 차이다) 동생이란 걸 생각하면 조던이 얼마나 사기적으로 몸관리/실력 관리가 됐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친정팀인 시카고 불스와의 경기에서는 개인통산 3만 득점을 기록하며 팬들에게 멋진 기억을 선사해주었다. 그리고 그를 그리워하던 팬들이 마지막으로 그의 모습을 보기위해 전국 모든 경기장으로 모여들면서 매 경기가 farewell 세레모니화되는 재밌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지막 유나이티드 센터 방문과 시즌 고별경기는 그 중 백미. [[마이클 조던/영상]] 문서를 참조. 이 유나이티드 센터 마지막 경기에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NBA에서는 경기 시작 전에 장내 아나운서가 각 팀의 선발 출전선수 소개를 할 때, 자기네 팀 선수에 대해서는 조명을 끄고 레이저 쇼를 벌이며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하지만, 원정 팀 선수에 대해서는 그냥 담담한 톤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미 조던은 이 곳 유나이티드 센터에서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지만 이 때는 시카고 불스 입장에서 조던이 원정 팀 선수였고, 때문에 구단 측에서는 아나운서에게 보통 원정 팀 선수들과 똑같이 소개하라고 일렀지만 아나운서는 '''이를 거부하고''' 조던을 시카고 시절과 마찬가지로 [[https://youtu.be/NT16TKR0boA?t=296|흥분된 목소리로 소개]]했고 당연히 시카고의 팬들은 열광하였다. 문제는 조던을 괘씸해하던 구단측에서 이걸 빌미로 아나운서를 해고시켜버린 것. 이후 그의 마지막 경기였던 필라델피아전에서도 원정팀이었지만 필라델피아는 친히 잘렸던 불스 아나운서 레이 클레이까지 초청해서 레이저쇼에 제대로 [[http://www.youtube.com/watch?v=ROnF4HdAJaI|세레모니]]를 해주었다. 조던은 비록 전성기에 비해 현저한 능력 저하를[* 확실히 저하된 것이 시카고 시절과 달리 수비를 달고 뛰는 점프슛이 상당히 늘어났다. 응? 단적으로 2차 복귀 이후로 이상하게 2단 점프슛을 자주 시도했는데, 그 이유가 스피드와 점프의 약화로 인해 한 번에 다른 선수를 제칠 수 없어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빨리 높게 못 뛰면 두 번 뛰면 되지!]]~~] 보임에 따라 팬들을 안타깝게 했지만 순간순간 드러나는 그의 운동능력과 센스는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그가 누구였는가]]를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당시 나왔던 [[소인배]]의 [[http://www.youtube.com/watch?v=IQJprZGr5XI|복수]]] 참고로 조던은 40세가 넘은 상태에서 40점을 한 번(43점), 30점을 세 번 넘겼는데 (39, 35, 30) 40살이 넘어서 30점을 넘긴 선수는 NBA역사상 조던이 유일하다. [[http://cafe.daum.net/ilovenba/7n/264458|만 40세 이상 선수들이 한 경기에서 기록한 최다득점 순위]]를 보면 1, 2, 3, 4, 6위가 조던이다. 40세를 넘어서 20점 이상을 넣는다는 것 자체가 쉬운일이 아닌데[* 빈스 카터가 2016-17시즌에 24점 경기가 있었는데, 이는 2004년 칼 말론 이후 13년만에 일이었다. 카터는 다음 시즌에 두 차례 20점을 넘겨서 40세 이후 20점을 넘긴 경기가 총 3경기다.] NBA역사상 총 61번 있었다. 그런데 이 중 3분의 1인 20경기가 조던이다. 심지어 조던은 40살 넘어서 30경기 밖에 치르지 않았다. 이 중 3분의 2에서 20점을 넘긴 것이었다. [* 참고로 조던이 40살을 넘기고 난 뒤 30경기 동안의 평균 기록은 39.9분 출장 22.4점 필드골 성공률 46.2% 7.2리바운드 3.4어시스트 1.3스틸 0.5블록 자유투성공률 83.9% 턴오버 2.2개였다. 추가로 당연히 이 30경기는 시즌 후반부였다. 즉, 이 시즌에 조던은 주전출장과 벤치 출장을 오갔던 전반기엔 18.6점 5.4리바운드 4어시스트 필드골 성공률 43.3% 자유투 성공률 81.1% 1.6스틸 0.5블록 턴오버 2.2개를 기록했지만, 일반적으로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기에 오히려 페이스를 끌어올려 평균 득점, 리바운드, 야투성공률, 자유투성공률까지 끌어올리며 더 좋은 활약을 보인 것이다. 게다가 조던은 이 시즌에 전경기를 출장했다. 시즌 평균 출장시간은 37분. ] 2위는 40살 넘어서 154경기나 치른 [[카림 압둘자바]]로 16경기이고, 이들을 제외하면 10경기 이상 20점을 넘긴 선수는 없다. 현역 최다는 위에 언급된 카터. 조던은 2003년 4월 16일,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와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공식 은퇴한다. 상술했듯 필라델피아는 해고된 불스의 장내 아나운서 레이 클레이를 초빙하여 선수소개때부터 조던에 초점을 맞췄고, 조던의 이름이 호명되자 전 관중들이 기립하여 박수쳤다. 이후 조던은 경기 종료 4분여를 앞두고 교체되어 벤치로 들어가며 자켓까지 입는다. 종목 불문 자켓을 입는다는 의미는 명백했다. 이에 경기장을 가득 채운 관중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기립하여 '''We want MIKE'''를 연호한다. 농구황제의 마지막 경기에 대한 팬들 최고의 찬사. 그리고 이를 본 조던은 결국 자켓을 벗고 다시 교체 투입되어 마지막으로 코트에 나선다. 그런 농구황제에게 필라델피아의 [[에릭 스노우]]는 고의적으로 가벼운 파울을 범한다. 조던에 대한 악감정이 아니라, 위대한 농구황제에게 마지막 득점 기회를 주기 위한 후배 선수의 존경어린 배려였다. 그렇게 얻은 자유투를 조던은 깔끔하게 성공시켰고, 그렇게 조던의 농구 선수 일생이 마무리된다.[* 이 득점으로 조던은 윌트 체임벌린을 소수점 둘째자리에서 제치고 역대 최고 평균 점수를 기록할 수 있었다.(소수점 한자리까지 하면 30.1로 동률) 그러나 애초에 이 경기에서 평균보다 낮은 15점을 넣었기에 그냥 나오지 않았다면 이 기록이 위협받는 일도 없었다. 심지어 이 경기는 워싱턴 홈도 아닌 원정경기였고 워싱턴은 플레이오프 탈락이 확정된 이후였다. 워싱턴은 79경기째인 4월 11일에 37번째 승을 거뒀으나, 같은 날에 동부 컨퍼런스 8위 올랜도가 41승째를 거둠으로서 남은 3경기에서 워싱턴이 전승/올랜도가 전패를 하더라도 역전이 불가능해 플레이오프에 탈락한 시점이었다. 그러나 조던은 40세 노장이 기록을 깎아먹으면서까지 아무 의미가 없는 잔여 3경기에 전부 출전해 그의 생애 9번째 시즌 전경기 출전을 달성했다. 그의 프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 im preview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함으로써, 사용자는 본인이 기여한 콘텐츠가 CC BY-NC-SA 2.0 KR에 따라 배포되며, 해당 콘텐츠에 대한 저작자 표시를 하이퍼링크나 URL로 대체할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합니다. 또한, 이 동의는 기여한 콘텐츠가 저장되고 배포된 이후에는 철회할 수 없음을 명확히 이해하고 동의합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8.118.210.6)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